출처 - 재규어코리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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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타타그룹 산하 재규어랜드로버(JLR)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이자 영국 태생의 제조사 ‘재규어’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2일(이하, 현지 시각) 해외 자동차 매체 오토에볼루션은 재규어가 장기간에 걸친 판매 축소와 경영난으로 브랜드 운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22년 재규어는 오는 2030년까지 브랜드를 완전 전동화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한 바 있다. 이른바 ‘판테라’로 명명된 독자 개발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신규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오는 2025년까지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전동화 버전 출시도 병행하는 계획이다.

이로써 전기차 시장의 최고급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재규어의 목표 실현을 위해, JLR은 생산 체계 확충 및 업그레이드, 디지털화, 연구개발 등에 향후 5년간 150억 파운드(한화 약 25조 5,000억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전체 투자금 중 재규어와 랜드로버 브랜드에 각각 할당될 금액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 계획이 공개된 지 수년 만에, 재규어는 브랜드의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고 오토에볼루션은 전했다. 매체는 “미국의 기존 JLR 딜러들 사이에선 인기 있는 랜드로버 차량을 더 할당받는 대신, 재규어 차량의 입고와 판매를 완전히 중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체는 “유럽에선 재규어 단일 매장을 영위하던 수많은 경영자가 브랜드로부터 차량을 할당받지 못해 사업을 잃었고, 혹자는 그나마 유지되던 고객들의 주문도 취소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재규어는 현존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을 오는 6월 종료하겠다고 밝히면서도, 2025년까지의 재고분은 충분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각국 매장과 딜러들이 차량을 수급하지 못해 고객의 대기가 장기화하는 등, 앞선 주장과는 상반되는 문제가 발생 중인 것이다.

지난 2021년 '리이매진(Reimagine)' 글로벌 신전략을 발표하는 티에리 볼로레 JLR 최고경영자(CEO) 모습 | 제공 - 재규어코리아
지난 2021년 '리이매진(Reimagine)' 글로벌 신전략을 발표하는 티에리 볼로레 JLR 최고경영자(CEO) 모습 | 제공 - 재규어코리아

설상가상으로 기존에 판매된 재규어 차량에서도 품질 논란이 잇달아 터지면서 경영 환경에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최근 재규어의 순수 전기차 ‘I-PACE’의 리콜 범위를 확대, 2018년 6월 6일부터 10월 31일 사이 마그나슈타이어 오스트리아 그라츠 공장에서 제작된 차량 전량(260여 대)을 리콜 대상으로 지목했다.

I-PACE는 지난해 6월 배터리팩 과부하에 따른 화재 가능성이 인정되며 리콜을 시작했다. 또, 지난해 5월에도 JLR은 2019~2024년형 I-PACE에 대해 고전압 배터리 과열에 따른 화재 위험을 노출하며 미국에서 약 6,400대 규모의 리콜이 진행되기도 했다. 실제로 재규어 I-PACE는 지난 2021년 8월 23일부터 2024년 2월 16일까지 미국에서만 총 61건의 화재 신고가 보고된 상황이다.

당시 재규어는 I-PACE 차주들에게 배터리 충전량이 75%를 넘지 않도록 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차량을 가급적 외부에 주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약 1년이 지난 지금도 재규어는 해당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고, I-PACE에 대한 배터리팩 전면 교체만을 지속하고 있다.

2016년~2020년형 재규어 F-PACE 모델의 경우, 영국에서 전동 스티어링 모터에 침수가 발생하며 차량이 주행할 수 없게 되는 문제를 노출했다. 영국 운전자·차량 표준기구(DVSA)는 JLR과 협력해 해당 사안을 조사 중이며, 이들 판단에 따라 현지에서 리콜로 발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JLR이 지난해 10월 영국에 신설한 물류 허브 ‘마시아 파크’에서 부품 공급 지연이 빚어졌고, 이에 따라 차량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오토카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영국 내에서만 약 1만 대의 재규어 차량이 제때 수리를 받지 못해 유휴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규어의 중형 전기 SUV 'I-PACE' 모습 | 제공 - 재규어코리아
재규어의 중형 전기 SUV 'I-PACE' 모습 | 제공 - 재규어코리아

현재 재규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완성차 업체로 살아남는다 해도, 미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 철수해 운영 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특히 JLR의 모회사인 타타그룹 역시 인도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만큼, 재규어가 중국 기업에 매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재규어 브랜드의 입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의 자료에 따르면, 재규어 브랜드의 연간 판매량은 △2018년 3,701대 △2019년 2,484대 △2020년 875대 △2021년 338대 △2022년 163대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판매량은 10대(1~4월 누적 판매량)에 그쳤으며, 이에 재규어는 국내 판매를 조기에 중단했다.

즉, “국내 시장에서 철수는 없다”라며 버티던 재규어 브랜드는 지난해 10대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쓸쓸하게 퇴장한 셈이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2023년 5월 시그니엘 서울 그랜드볼룸서 열린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재규어는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며 오는 2025년 한국 시장에 직접 판매 방식으로 돌아온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 △품질 논란 △철수 △중고차 감가 방어 제로라는 최악의 이미지를 심어준 재규어 브랜드의 국내 재진출이 큰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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